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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다니엘 벨

2006.08.11 (10:51:16)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공포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나라는 거짓으로 넘친다.
물레바퀴처럼 세상은 돌고 돌아 변한다.
대중은 목자 잃은 양처럼 겁에 질려있다.
어제의 가난뱅이가 오늘엔 부를 쌓나니,
지난 날의 부자가 이를 부러워하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다니엘 벨, 이상두 역, <이데올로기의 종언>, 범우사, 1984, 266쪽-


* * * *




사회주의란 하나의 끝없는 꿈이었습니다. 푸리에는 사회주의 아래에서 키가 최소한 3미터는 커진다고 약속했고,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호언장담했습니다(113쪽).

“인간은 예측할 수 없으리만큼 점점 강력하고 현명하고 자유롭게 되고 그 신체는 지금보다 훨씬 더 조화있고 균형잡히고, 그 동작은 한층 더 율동적이 되고, 그 소리를 한층 더 음악적으로 되며, 그 자태는 극적인 활동력으로 흐로게 될 것이다”(113쪽).

19세기에 참으로 잘 짜여진 유토피아는 진화와 함께 이성이 대두하여 완전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있었습니다(129쪽). 그러나 어떠한 찬성의 제스처도 어떠한 사회 개혁에의 압력도 단순한 전술에 불과하고, 기만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시기가 지나면 파괴해 버리는 위장 촌락과 같은 것이었습니다(135쪽). 다음 레닌의 유명한 이야기는 목표만 중요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말하거나 훔치거나 혹은 사람을 기만해도 좋다. 왜냐하면 주의 그 자체가 보다 높은 진리이기 때문이다”(139쪽).


이데올로기는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특정한 집단의 요구를 반영한 것일 따름입니다(270쪽).



“사회주의의 새로운 메시아주의는 불만을 품은 지식인의 이데올로기에 가면을 씌운 것으로, 새로운 사회주의는 다만 어느 지배계급과 다른 지배계급을 대치시키는 데 불과하며, 그 때문에 이번에는 전문적 지도자라는 새로운 계급에 의한다고 하지만 노동자는 여전히 착취당하는 상태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마체요프스키,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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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가장 환상적인 비난과 함께 당 간부들을 숙청했다고 하는데(177쪽), 소비에트는 어떠한 착취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마체요프스키)는 사회주의자의 이름으로 기도되는 혁명은 결국 기술자, 조직자, 행정관리, 교육자, 언론인(즉 지식인)이 ‘국가라는 이름의 대주식회사’를 구성하여 육체 노동자에 대하여 집단적으로 새로운 특권층이 되는 것 같은 국가 자본주의의 착취 형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노동자의 정부’라는 것이 있을 리 없고, 권력의 획득은 다만 낡은 지배계급에 대치되는 새로운 지배계급의 임명을 의미하는데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마체요프스키는 말했다. 역사란 혁명이 일어난 후에도 노동자가 혁명투쟁을 계속 강요당하게 되는 항구적인 계급투쟁이다”(208쪽).


소비에트의 권력 정점에서의 모든 움직임은 서열, 위신, 권력에의 투쟁 따위가 관철되어 있다고 합니다. 누가 최고 권력의 지위에 있는가를 추청하려면 만찬회의의 좌석 순서를 보든가, 최고회의에서 누가 연설하는가를 보든가 하는 이상한 게임을 해야합니다(184쪽). 그야말로 계급이 없는(?) 낙원의 실상인 것이지요.


“인간 사회는 새롭게 고쳐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247쪽).


공산주의자는 단지 무엇을 믿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무엇인가를 행동하는 것으로만 자기의 성격을 고착시키려고 합니다(172쪽). 이데올로기란 단 하나의 이데아를 강요하는 사상이 아닐까?


“그들의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상당히 동떨어진 많은 쟁점에 대한 태도 결정을 요구받았을 경우에는 어휘나 수사학적인 기법, 혹은 이용하는 분석 범주나 공식까지도 낡은 이데올로기적인 기치로 되어 버린다. 그들은 이처럼 낡아빠진 이데올로기의 기치를 사용하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이데올로기란 확신의 경직화요, 의견의 동결이기 때문이다”(200쪽).

해설

이데올로기의 종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착취자 교환 과정을 통해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빼내는 것을 허용하는 자본주의의 사유재산제에서 생겨난 경제 현상이기 때문에, 사유재산이 사회화돠면 잉여는 인민에게 속하게 되고 착취는 소멸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210쪽). 완벽한 유물론의 함정에 빠져 들기 위해서는 돈에 의한 소외가 아니라 반드시 신적 존재를 완전히 끌어내려야 했던 것입니다.

“소외를 극복하는 길은 인간이 이상화시킨 신이 아닌 인류의 종교, 자기애의 종교에 의해 자기를 회복하기 위하여 그 신을 인간으로 바꿔놓는 것으로 가능하다. 비판의 기능은 소외 내지 자기 소외라고 하는 근원적 개념 도구를 사용하여 신학을 인간학으로 바꾸어서 신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인간을 대신 그 자리에 앉히는 일이었다”(213쪽).

철학은 이 세상의 생활로 향하는 것으로 되었으며, 인간은 ‘추상적인 망령’으로부터 해방되고 초자연적인 것의 속박에서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종교란 허위허식을 창출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것으로 일종의 마약이라고 선전한 것입니다(268쪽).

“헤겔 좌파 중 가장 급진적인 포이에르바하는 그 자신을 제2의 루터라고 칭했다. 만약 종교의 신화적 성격을 쫓아내기만 하면 인간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그는 썼다. 모든 사상사는 진보적인 각성의 역사였으며,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결국 신이 편협한 신성으로부터 보편적인 추상 개념으로 변했다면, 비판의 기능은 신학 대신에 인간학을 대치시키고 신 대신에 인간을 대치시키는 것이었다”(267쪽).

종교의 자리에 유물론의 망상을 두고 섬기게 만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완전한 자유를 누린 듯 하지만, 결국 또 사단에게 속은 것입니다. 계급이 없는 사회에서 그들에게 진리란 계급적 진리였습니다(268쪽). 그들의 분류법에 따르자면,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원리조차 부르주아과학이었으니까요.

“요컨대 진리란 계급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객관적인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고, 부르주아 철학과 프롤레타리아 철학만이 존재하게 되며, 객관적인 사회학은 없고 부르주아 사회학과 프롤레타리아 사회학만이 존재할 뿐이다”(271쪽).

마르크스주의자인 레오 프랑켈이 심술궂게 언명한 바와 같이 ‘그 유일하고 참된 사회주의적 시책은 빵집의 야간 작업을 폐지하는 포고’였습니다(224쪽). 잉여 노동 없는 노동자 천국을 만들려던 사회주의의 음모는 더 이상 빵집이 필요없다는 것이겠지요. 역사적 유물론은 골동품이 되었지만, 유물론의 망령은 이 나라에서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란 사상적으로 말하면 획기적인 시대에 쓰여진 저서, 즉 사회변동에 관해 안이한 좌익적인 서적의 공식화를 끝장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책들을 끝장낸다는 것은 결토 이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과거의 일들을 거의 모르는 신좌익이 대두하고 있는 오늘날, 이것은 더 한층 중요한 일이다. 이 신좌익은 정열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나, 거의 미래는 정의하지는 않고 있다. 즉 사회주의란 무슨 의미이고, 관료화는 어떻게 막아낼 것이며, 민주적인 계획이라든가 노동자에 의한 통제는 어떤 의의를 가진 것인가 등 엄격한 사고를 필요로 하고 있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항상 화려한 미사여구로 답하고 있을 뿐이다”(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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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황인철 부자는 도둑이다. 부자의 빵을 빼앗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자. 그것만이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길이다. 힘없이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겐 복음이었던가 봅니다. 돼지의 속임수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엔 더 많은 것을 강탈당한 뒤이겠지요. 신좌익이 날뛰는 이상한 나라에서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