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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토마스 만

2006.09.21 (12:35:48)

 

인생은 골칫거리 자식이란 뜻이지요


그러나 이것도 책에 적혀 있는 그대로였다.
제 딴에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같은 곳을 빙빙 돌면서,
사람을 기만하는 1년이라는 시간의 순환처럼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어리석은 원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빙빙 돌며 헤매다가
마침내 길을 잃고 마는 것일까?


-토마스 만, 최호 역, <마의 산>, 홍신문화사, 1994, 2-178쪽-



* * * *


시간이 남아돌아 고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1-15쪽). 시간이란 것은 자꾸 보고 있으면 더디게 가는 법인데(1-82쪽), 젊은 사람들이 모두 한없이 명랑할 수 있는 건 자유롭고 젊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입니다(1-64쪽).


“시간이란 말이야, 결코 실제라는 것은 없어. 길다고 느끼면 길고 짧다고 느끼면 짧지. 그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길고 짧은지 아무도 몰라. 1분이란 것은, 초침이 한 바퀴 도는 데 필요한 시간, 다시 말해서 그것에 필요한 시간을 의미하는 거야. 초침이 돈다는 것은 하나의 운동, 말하자면 공간적인 운동에 지나지 않아. 그렇지, 말하자면 우리는 시간을 공간에 의해서 계산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이것은 공간을 시간으로 계산하려는 것에 불과해. 공간을 시간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인간만이 하는 일이야”(1-82쪽).


중세의 학자들은 시간은 인간들의 착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인과 관계와 연속에 의한 시간의 경과는 인간들의 감각 기관에서 나온 부산물이며 사물의 참된 실체는 불변의 현재라고 정의했습니다(2-244쪽).


“따라서 시간이 길고 지루하다는 것은 사실은 생활이 너무 단조로운 나머지 생겨나는 시간의 병적인 단축으로서, 요컨대 많은 시간량이 막간없이 계속되는 단조로움 때문에 무시무시할 정도로 위축되고 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루하루가 매일매일 같은 생활이라면 수없이 많은 날도 하루와 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완전히 같다면 아무리 긴 일생이라도 무서우리만큼 짧게 느껴지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말 것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시간 감각의 마비를 의미한다. 혹은 적어도 그 이완을 의미한다. 청춘시절이 비교적 더딘 데 비해 그 후의 세월이 차차 바쁜 걸음으로 흘러간다는 것도 이 습관이라는 것에 원인이 있음이 틀림없다”(1-126쪽).


시간은 수수께끼요, 그 정체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1-169쪽).


“그래서 항상 그렇듯이 세월은 둔감한 사람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채 남모르게 스며들어왔다. 원래 시간 자체에 구분선이 있을 리는 없고 새로운 달과 새로운 해가 천둥과 나팔소리를 신호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 총을 쏘거나 종을 치는 것은 우리 인간뿐이다”(1-268쪽).

* * * *

세상에는 갖가지 어이없는 일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배우게 마련입니다(1-233쪽).


“인간이란 개개의 존재로서 개인적 생활을 보내는 것뿐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동시대인의 생활을 사는 것이다”(1-43쪽).


인간의 양심은 얼마나 속기 쉬운 것인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의무의 소리 가운데서도 정열에 몸을 맡기기 위한 구실을 교묘하게 가려냅니다(1-191쪽). 문화인으로서 문화인이란 말이 반드시 좋은 의미만은 아니지만. 그것이 문제입니다(1-61쪽).


“나는 문화인으로서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어. 나는 그런 혼란을 보면 흥분이 돼. 한 사람은 국제적 세계 공화제를 역설하고, 원칙적으로는 전쟁을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애국적이어서 브렌네르 경계선을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문명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했지. 한 사람은 국가를 악마의 것이라 간주하고 보편적 인류의 결합을 걱정하면서도, 곧 자연적 보호의 권리를 변호하며 평화 회의를 우습게 여기다니”(2-62쪽).


개라도 우스운 짓은 안 할 겁니다(1-261쪽). 단지 의지가 약해 불안전한 사회의 희생물이 된 것뿐입니다(2-150쪽).


“진리의 기준을 인간에게 돌려 인간을 위하는 것이 진리라고 선언하는 것은 방종이 아닌가. 이처럼 진리를 인간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이야말로 세속적인 시민 근성이다. 그것은 엄격히 말해서 확고한 객관성이 아니다”(2-157쪽).

해설

1. 시간

<마의 산>은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생활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없나 봅니다(1-24쪽).

“3주만에 보는 그들의 태도는 3시간만에 만났을 때의 태도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것은 그에 대한 무관심에서라기보다는, 또 누구든지 자기의 일, 즉 자기의 신체적인 일에만 전념해서라기보다는 3주일의 공백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1-244쪽).

생에 강하게 집착하는 사람은 나날이 가볍게 스쳐나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것입니다. 예컨대 4주일쯤 체류한다면 마지막 한 주일은 불쾌할 만큼 총총히 지나갑니다(1-126쪽).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상한 것은, 모르는 땅에 온 처음 얼마 동안은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는 거야. 더구나 나는 전혀 무료하지 않고 오히려 왕처럼 유쾌하게 지내고 있는데도 말야. 돌이켜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 무척 오래 머무른 느낌이야”(1-127쪽).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며 실체가 없습니다(2-11쪽).

“시간이란 말이야, 결코 실제라는 것은 없어. 길다고 느끼면 길고 짧다고 느끼면 짧지. 그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길고 짧은지 아무도 몰라”(1-82쪽).

시간이란 것은 자꾸 보고 있으면 더디게 가는 법입니다(1-82쪽). 지루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세상에 여러 가지 잘못된 사고 방식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생활 내용이 흥미 깊고 신기하면 그 때문에 시간은 빨리 흘러갑니다(1-126쪽).

“따라서 시간이 길고 지루하다는 것은 사실은 생활이 너무 단조로운 나머지 생겨나는 시간의 병적인 단축으로서, 요컨대 많은 시간량이 막간없이 계속되는 단조로움 때문에 무시무시할 정도로 위축되고 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루하루가 매일매일 같은 생활이라면 수없이 많은 날도 하루와 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완전히 같다면 아무리 긴 일생이라도 무서우리만큼 짧게 느껴지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말 것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시간 감각의 마비를 의미한다. 혹은 적어도 그 이완을 의미한다. 청춘시절이 비교적 더딘 데 비해 그 후의 세월이 차차 바쁜 걸음으로 흘러간다는 것도 이 습관이라는 것에 원인이 있음이 틀림없다”(1-126쪽).

모두들 젊을 때에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1-64쪽), 젊은이들은 오히려 시간이 남아돌아 걱정합니다(1-15쪽).

“기다리는 사람은 시간이 길다고 하지만, 짧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것은 긴 시간을 긴 시간 자체로 보내지 않고 그것을 이용하지 않은 채 마구 삼켜버리기 때문이다”(1-283).

원래 시간 자체에 구분선이 있을 리는 없고 새로운 달고 새로운 해가 천둥과 나팔소리를 신호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 총을 쏘거나 종을 치는 것은 우리 인간뿐입니다(1-268쪽). 우리들은 시간을 계산합니다. 1분이란 것은 초침이 한 바퀴 도는 데 필요한 시간이라고 하면서(1-82쪽), 재미있게도 토마스 만은 시공간의 등가성 원리를 문학적으로 증명합니다.

“초침이 돈다는 것은 하나의 운동, 말하자면 공간적인 운동에 지나지 않아. 그렇지, 말하자면 우리는 시간을 공간에 의해서 계산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이것은 공간을 시간으로 계산하려는 것에 불과해. 공간을 시간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인간만이 하는 일이야”(1-82쪽).

시간에 대한 감각은 유럽에서 온 것입니다. 훌륭한, 치밀하게 분할된 공간이 적은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부족한 그들은 어느 것이든, 면밀히 처리하고 노력해서 이것을 철저히 이용하도록 강요를 받고 있습니다(1-287쪽). 시간이 돈이라는 아포리즘에 익숙해진 서구화된 현대 사회는 시간 관리를 강요하고 있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야만으로 취급합니다.

“시간이란 것을 신성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건방진 시간의 낭비, 이 야만적인 대담한 노릇, 이것은 아시아적인 것입니다”(1-287).

서구인은 주장하기를 시간은 신들의 선물, 인간이 그것을 이용하도록 빌려주신 선물이니, 인류의 진보를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라고 합니다(1-287쪽). 지금 우리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2-14쪽).

“시간이란 정말 현기증을 느끼도록 빠른 것이며, 아편이나 하시시의 도움을 받지 않는 악몽이다”(2-282쪽).

2. 여자

여자들이 동화에서처럼 매혹적인 복장을 하면서, 더구나 예의에 맞도록 처신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인데, 그것은 하나의 목적, 즉 다음 세대, 인류의 번식을 위한 것이랍니다(1-155쪽).

“여자들이란 도대체 어떤 복장을 하는 것일까! 여자들은 목과 가슴께의 군데군데를 드러내 놓고 투명한 망사로 팔을 감싸 아름답게 보이도록 애쓴다. 세계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여성은 그러한 복장으로 우리 남성들의 욕망을 일깨운다. 아아, 인생은 아름답다! 그러나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여자가 매혹적인 복장을 한다는 당연한 일에 의한 것이지 않은가. 그것은 물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반적인 관습으로서 어디서나 행해지고 알려져 있어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여 즐길 뿐, 새삼스레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떠드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들이 인생을 마음껏 즐기고 맛보기 위해서는 그 점을 분명히 의식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1-154쪽).

병든 여자에게 남자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반이성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1-155쪽). 우리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병든 여인에 대한 미묘한 관계에서 생기는 흥분, 긴장, 만족, 실망 등을 진정한 목적이며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열중하게 된 것입니다(1-173쪽).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그 자신도 자기의 염원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인가를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빠져 있는 듯한 상태, 그렇게 되기 시작한 듯한 상태 안에 있는 인간에게는 이것이 어리석고 비상식적인 상태라 하더라도 그것을 상대가 꼭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1-170쪽).

육체적인 것이 개입되면 그 즉시 모든 것이 신비롭게 되어 정신적인 것은 육체적으로, 육체적인 것은 정신적인 것으로 바뀌어 뭐가 뭔지 구별하기 힘들게 되고 바보인지 똑똑한 사람인지조차 가릴 수 없게 되는 혼란한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2-294쪽).

“어떤 인물을 비화시킨다는 건 우상 숭배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당신이 존경하고 있는 것은 가면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현혹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경우에, 즉 육체적이고 인상적인 악마가 우리들을 속이려고 사용하는 기만적인 내용, 공허한 형상에 지나지 않는 것을 신비라고 믿어버립니다. 당신은 배우들과 교제해 본 일이 있습니까? 율리우스 카이사르, 괴테, 베토벤의 풍모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 훌륭한 풍모의 소유자가 한번 입을 열어 말하면 세상에도 보기 드문 바보에 지나지 않는 광대라는 것을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2-295쪽)

세상 사람들은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2-296쪽). 여자들은 거물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맥을 추지 못합니다(2-297쪽).

“남성은 자신의 정욕에 도취하려 하고, 반면에 여자는 남자의 정욕에 도취되고 싶어합니다”(2-322쪽).

여자라는 것은 여성의 남성에 대한 태도가 얼마만큼 남성의 여성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 좌우되는지를 미루어 볼 때, 여성은 반응적인 존재라 할 수 있겠지요. 여성은 독자적인 이니셔티브를 취하는 법이 없고 수동적이란 의미에서 참으로 무기력하다고나 할까요(2-321쪽).

“여성은 애정면에서 언제나 자신이 사랑받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성이 자신에게 접근해 주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자신이 직접,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려는 일은 거의 없고 남성이 자신을 선택해 주면 비로소 선택을 하게 되는 주체가 되는 셈이지요. 여성의 선택의 자유는, 그처럼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선택을 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자유를 침해당하고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2-321쪽).

3. 죽음

인생은 골칫거리 자식이라고 합니다(2-90쪽).

“의학은 지극히 우아한 라틴어로 생명과 그 병에 말을 걸지만 실은 하나의 크고 절실한 형태에 불과하고, 그 관심에 공감을 갖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바로 인생은 골칫거리 자식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에 관한 것, 인간의 위치와 본성에 관한 것이다”(2-187).

인간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잊지 못합니다(2-188쪽). 그러나 우리들이 죽는다는 것은 사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그리스 철학자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죽음이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올 땐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2-226쪽).

“죽음에 대해서 건전하고 고상하며 종교적이기도 한 유일한 견해란 죽음이란 생의 일부분이고 그 부속물이며 신성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일입니다. 죽음을 삶으로부터 떼어내는 삶과 대립시키는 그런 방법이어서는 안됩니다”(1-238쪽).

삶이란 죽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1-314쪽). 죽음은 삶의 요람이며 갱생의 모태라는 의미에서 존경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삶에서 떼어버린 죽음은 괴물이며 저주스러운 것입니다(1-239쪽).

“죽음의 모험은 삶에 포함되며, 그런 모험이 없는 삶은 이미 삶이 아니다. 그 가운데, 즉 모험과 이성 사이에 신의 아들인 인간이 있는 것이다”(2-187쪽).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생명은 생명으로 된 순간부터 자기를 의식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지만 자신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합니다(1-323쪽).

“죽음은 삶의 논리적 부정에 불과하지만, 생명과 무생명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어서 과학이 아무리 거기에 다리를 놓으려 해도 결국 헛수고일 뿐이다”(1-324쪽).

모든 생각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죽음에 종속시키기에는 너무나 고귀한 두뇌를 갖고 있으며, 삶에 종속시키기에는 너무나 고귀한 마음의 경건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느 무엇보다도 고귀한 것입니다(2-188쪽).

“죽음은 위대하다. 우리들은 죽음 앞에서 모자를 벗고 까치걸음을 걸으며 몸을 흔들고 전진한다. 죽음은 과거의 존엄을 표시하는 장식 깃을 달고, 우리들은 경의를 표하는 검은 옷을 입는다. 이성은 죽음 앞에서는 어리석은 존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성은 미덕에 지나지 않지만 죽음이란 자유, 방종, 무형식, 쾌락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쾌락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나의 꿈은 말한다. 죽음과 사랑, 이것은 잘못된 배합이다. 이 둘은 대립적이며, 사랑만이 죽음보다 강한 것이고 사랑만이 올바른 생각을 낳게 한다”(2-188쪽).

4. 문학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대한 일차적 의문은 ‘대관절 문학이라는 것이 무엇을 줍니까?’(1-117쪽)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품성,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죠? 저는 이 세상의 실생활에서 아름다운 품성 같은 것을 만나본 일이 없으니까요”(1-117쪽).

아름다운 품성은 문제가 안된다 해도 아름다운 말은 확실히 문학의 목적이 아닐까?(1-123쪽)

“‘이것입니다’하고 외치고 있는 ‘말’, 말의 예찬, 웅변에 대해 말하면서 웅변이야말로 인간성의 승리하고 역설했다. 말은 인간의 명예요, 말에 의해서만 비로소 인간의 존엄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휴머니즘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애, 즉 인간의 존엄이라든가 인간의 자기 존경이라는 예로부터의 모든 관념은 말과 문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1-189쪽).

인간의 존엄성에 정말 무서운 적은 정체를 모른다는 무지입니다. 문학은 인류를 공포와 인종의 무감각의 원시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목적을 의식한 활동에로 인도합니다(1-290쪽).

“우리들의 유기체, 그 동물적 부분 때문에 이성에의 봉사를 방해 당하는 것 이상으로 슬픈 일은 없습니다”(1-290쪽).

문학이 인간의 고뇌를 대상으로 하는 한은 문학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1-291쪽).

“개인의 고뇌의 태반은 사회 조직의 결함에 기인하는 것, 그것을 인류에게 알리지 않으면 안됩니다”(1-290쪽).

그러므로 문학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문학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는 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 교육과 그 도덕적 완성은 문학의 정신, 즉 인간 존중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 동시에 인간애와 정치와의 정신이기도 하다”(1-190쪽).

문학이란 결국은 휴머니즘과 정치와의 결합이며 이 두 가지는 휴머니즘 자체가 정치이며 정치가 휴머니즘인 만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1-189쪽).

“‘문학에서는 아름다운 말이 문제가 된다고 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정치도 또한 문학과 관계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정치는 이 결합, 인간애와 문학과의 결합에서 생긴 것이다. 아름다운 말에서 비로소 아름다운 행위가 나오기 때문이다”(1-190쪽).

문학자의 오류는 정신만이 인간을 진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없는 곳에야말로 진실이 있다고 하는데(2-235쪽), 어쨋건 간에 문학은 바르게 인식하고 바르게 표현해야겠지요.

“인식하고 표현하려는 용기, 그것은 바로 문학이며 인문 정신입니다”(2-297쪽).

5. 사랑

사랑이란 무엇인가, 왜 사랑을 하게 되는가, 대단히 진부한 말이지만 여전히 이성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인간이라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의문입니다. 사랑은 육체의 갈망이라는데…

“육체가 이토록 육체를 갈망하다니, 더군다나 그것도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 남의 영혼이 깃들인 육체를 그토록 갈망하다니•••••한편 잘 생각해 보면 사랑을 갈망하는 육체의 소망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이며 또 얼마나 경건한 것입니까!”(2-340쪽)

사랑을 육욕이라고 하면 짐승처럼 육욕을 갈망하는 인간이라도 불쾌하게 여길 겁니다.

“나는 짐승이 아닙니다. 이래봬도 나 역시 한 인간입니다! 육욕이란 특정한 대상없이 이리저리 옮겨가기도 하지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육욕은 동물적이라고들 하지요. 그러나 육욕이 동일한 얼굴을 가진 어떤 한 인간에게 고정되어 버리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부르게 됩니다”(2-341쪽).

사랑은 병의 형태 속에 있으며 병의 증상은 가면을 쓴 사랑의 활동이요, 일체의 병은 변형된 사랑에 불과하다고 말하면(1-153쪽), 지나친 정신병리학적 해석이라 할 수 있겠지요. 토마스 만적으로 냉정하게 분석해 보자면 사랑은 일종의 도착증인 것입니다.

“모든 본능 가운데 사랑이야말로 가장 불안정한 믿을 수 없는 본능으로서 착오와 구제할 수 없는 도착으로 빠져들기 쉬운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이 강력한 충동은 단일한 것이 아니고 원래 여러 가지 복합체이며 게다가 그것은 전체로서는 정상적인 것이나 부분적으로는 처음부터 도착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1-152쪽).

아아 청년의 극단적인 감탄성•••••이것이 교육자를 절망시킵니다. 젊은이들은 무엇보다 나쁜 일에 감탄하려고 드니까 말입니다(1-286쪽). 지극히 관능적인 세대에 사는 젊은이들이 사랑에 대해 사리분별을 잘 못한다고 충고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또 하나의 도착증이겠지요.

“우리들의 언어가 지극히 경건한 사랑에서부터 지극히 관능적이며 육욕적인 사랑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인 사랑의 현상을 단 한 단어, 사랑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일인가! 사랑이란 불명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아무리 경건하더라도 육체와 결부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아무리 육욕적이며 관능적인 사랑이라 하더라도 경건함이 결여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삶에 대한 교활한 호의라는 형태를 취하든지, 맹목적으로 격렬한 정열의 형태를 취한다 하더라도 사랑은 언제나 사랑 그 자체이다. 부패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 유기체에 대한 공감이며 감동적이고 방종한 포옹인 것이다. 아무리 경이로운 정열일지라도, 또 아무리 미친 듯이 날뛰는 정열일지라도 그 속에는 박애적인 사랑이 깃들여 있음이 틀림없다. 만약 지금까지 말한 의미가 애매하다 하더라도 사랑의 의미는 애매한 대로 그냥 두었으면 싶다! 애매모호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랑은 생명이 있고 인간적이다. 그 의미가 애매하다고 해서 고민한다는 것은 교활하고 비정하며 천박한 단순함을 드러내는 것이다”(2-318쪽).

오늘 사랑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동전의 한 쪽만 본 것이니, 이것으로 사랑의 편력에 빠지면 곤란하겠지요. 이러한 사랑에 대한 분명한 경고는 사랑의 도착증에 빠진 사람은 눈이 멀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미적 판단도 내릴 수 없는 것이다”(1-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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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황인철 <마의 산>에 오르기도 힘들었지만 내려오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소문을 듣고 <마의 산>에 올랐다가 도중에 내려오는 분이 많습니다. 좋은 작품은 끝까지 읽어보아야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 자신의 일부로 잔잔하게 남아 메아리칩니다. 푸르른 가을 하늘 아래서 <마의 산> 등정을 해보심은 어떠하신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