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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3

 
저자 볼테르

2004.05.22 (05:01:56)

 

모든 것은 잘 되어 있고, 잘 되어 가며, 더할 나위없이 최선으로 가고 있습니다

사물들이 달리 될 수 없다는 것은 입증이 되었네.
왜냐하면,
어떤 목적을 위해 생긴 모든 사물은
필연적으로 가장 좋은 목적을 갖고 있으니까.
코가 안경을 걸치기 위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안경이 있다는 사실을 잘 주목해 보게나.
다리는 분명히 옷을 입도록 규정이 되어 있으므로,
우리에게 바지가 있는 거고.
돼지는 먹히기 위해 생긴 것이므로,
우리는 일년 내내 돼지 고기를 먹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잘 되어 있다는 착상을 제시한 사람들은
어리석은 말을 한 거고,
모든 것이 최고로 잘 되어 있다고 말해야 했던 것일세.

-볼테르, 김 미선 역, <캉디드>, 을유문화사, 1994, 22쪽–

* * * *

‘어떤 결정적인 이유나 원인이 없이는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라이프니쯔적 사유는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잘 되어 있다’는 소치니적 낙관주의의 충족이유율이 됩니다.

이러한 얘기는“얼핏하면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말해보지 않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머리부터 나를 바다에 던져 넣으”(83쪽)라고 소리치는 노파에게는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입니다. 어쩔 수 없이 어리석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노파의 회상은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푸념이기도 하기에 경청할만 합니다.

“엉덩이 한쪽만을 가진 채, 내가 교황의 딸이라는 사실을 항상 생각하면서, 비참과 치욕속에서 늙어간 거였지유. 백 번이나 자살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삶을 사랑했지유. 그런 우스꽝스런 나약함은 아마도 가장 비참한 우리의 성향 중 하나일 거유. 왜냐하면, 언제라도 땅에 내던질 수 있는 짐을 계속 짊어지려고 하는 것보다 더 바보스러운 짓이 있을까유? 또 자신의 삶을 염오하면서도 그 삶에 애착을 갖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유? 요컨대 우리의 심장을 먹어버릴 때까지 우리를 모조리 먹어치우는 뱀을 어루만지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 있겠는가 말이유”(82쪽).

죽어가면서도 자기 학문에 도취되어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변론하는 낙천주의자를 살린 착한 자크의 생각은 다릅니다.

“인간은 약간 자연을 오염시킨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는 늑대가 아닌데, 늑대가 되어버리니까요. 하나님은 인간에게 대포도 총검도 만들어주지 않았으나, 서로를 파멸시키려고 인간이 총검과 대포를 만들었지요. 난 파산과 채권자들을 좌절시키려고 파산자들의 재산을 가로채는 법원도 오염의 전열에 넣을 수 있습니다”(41).

애꾸눈 박사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그 모든 것은 필요 불가결했던 것이고, 개개인의 불행은 전체의 이익이 되니, 결과적으로 개개인의 불행이 많으면 더욱 더 모든 것은 좋은 것이지요.”

‘낙천주의가 무엇이냐?’는 카캄보의 질문에 캉디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 그건 우리가 비참할 때 모든 것이 잘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광기지”(129).

* * * *

그래도 선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마니교도처럼 언제나 세상을 삐딱하게 봅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를 어떤 사악한 존재에게 넘겨준 것처럼 생각이 되는군요. 난 이웃도시가 파괴되기를 바라지 않은 도시들을 본 적이 거의 없고, 다른 집안을 몰살시키려고 하지 않은 집들도 좀체 보지 못했습니다. 도처에서 약자들은 자기들의 그 앞에서 굽실거리는 강자들을 증오하고, 강자들도 약자를 털이나 살이 팔리는 양떼처럼 다루지요. 연대로 편성된 백 만의 살인자들은 유럽의 끝에서 끝으로 달리면서, 더 신사적인 다른 직업이 없으니까, 빵을 벌려고 조직적인 살인과 약탈을 행하지요”(137쪽).

물론 ‘하나님이 알아서 마음을 써 주실 것이니까 될대로 되라’(90쪽)는 식의 완전한 낙천주의로 세상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투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습득합니다. 아마 투쟁 본능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자연법은 이웃을 죽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고, 또 온 지구 사람들은 바로 그렇게 행동을 하고 있죠.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먹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건 요기할 다른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106).

인간은 잘 될 것 같은 내일을 위하여 부지런히 자기를 복제하고 있습니다. 조금 미친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금과 보석 멸시하는 것을 배우도록 잘 가르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113쪽). 그러나 사람들은 돌과 진흙에 대해 생각지도 못할 광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갖기 위해서라면 마지막 한 사람까지도 죽이도록 훈련시키고 있습니다(117쪽). 그리고는 항상 동시에 입으로만 이렇게 되뇌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잘 되어 있고, 잘 되어 가며, 더할 나위없이 최선으로 가고 있습니다”(170쪽).

모두 잊은 것이 있습니다. 왜 세상이 이럴까? 이래야만 할까? 쉬임없이 지독히도 많은 악을 창조해내는 이상한 동물은 대체 무엇일까?(216쪽)

“분명히 귀하께서는 원죄를 믿지 않으시는군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최고로 잘 되어 있다면, 타락도 응벌도 없었는데 말입니다”(47쪽).

해설

‘이 세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아주 미친 것 같고 혐오스러운 것이죠.”(167쪽)라고 말한 것처럼, 세상은 미쳐있다는 것이 조금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공교롭게도 요즘 쓴 글에서 미친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세상의 현인들은 공통적으로 세상이 미쳤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푸코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을 구태어 ‘광기의 시대’라고 정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초의 인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푸코가 똑똑한 것은 ‘광기의 시대’를 처음으로 논리 정연하게 증명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대부분은 바보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이 미쳤던 안미쳤던 그냥 살면 되는 것이지 따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포도청인 목구멍인 보통 사람이야 이런 문학이 똥 같은 소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자기의 삶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철학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갈대이기에 자기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 있고, 규정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이것도 저것도 적당하게 혼합하여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볼테르(1694-1778)가 루소를 비롯하여 당시 기독교(특히 구교와 예수회)에 대해 풍자적으로 캉디드를 썼지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도 유용한 이야기이기에 잘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많은 지식이 늘어나도 인간성에는 조금도 변화되는 것이 없기에 이 시대의 사람들도 똑같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인용한 본문은 라이프니쯔(1646-1716, 독일 철학자)의 충족이유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기에, 그의 관점에서는 결과를 보면 존재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원인없이 결과가 없고, 모든 존재는 나름대로 목적이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가장 잘 되는 쪽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는 될대로 되라고 해도 결국 모든 일이 최선의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는 소치니(1525-1562, 이탈리아 법률가)의 낙관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는 비관주의자라도 지랄 같은 세상에서 목숨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노파는 그 전형(stereotype)입니다. 노파는 실제로 교황의 딸이 아닙니다. 그러한 환상이라도 있으니, 낙천적인 삶은 아니지만, 살아갈 충족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엉덩이 한쪽만 가졌어도, 비참과 치욕 속에서도, 삶을 염오(厭惡)하면서도, 삶이 바보같아 심지어 자기를 모조리 먹어치우는 악당을 어루만지는 짓이라 할지라도, 나름대로 프라이드(자기 존중의 요소)가 있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도 나름대로의 자기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기에 살아갈 충족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프라이드조차 빼앗긴 사람은 살 소망이 없기에 과감히 세상을 버립니다.

‘낙천주의의 전형인간인 판글로스 선생은 죽어가면서도 모든 것은 더할 나위없이 최선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그를 불쌍히 여겨서 살린 착한 재침례파 교도 자크는 인간은 늑대가 되어 자연을 오염시켰고, 인간이 정의를 구현하는 법정조차 오염시켰다고 합니다. 인간은 늑대가 되어, 어쩔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에 대해 애꾸눈 박사는 모든 것이 필요 불가결한 악이며, 개개인의 불행은 전체의 이익이 된다고 변론합니다. 개인의 불행은 공공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주장들입니다. 이쯤되면 낙천주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 법 합니다. 볼테르는 캉디드의 입을 통하여 기막히게 대답합니다.

‘“아! 그건 우리가 비참할 때 모든 것이 잘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광기지”(129).

‘인간으로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이 알아서 마음을 써 주실 것이니까 될대로 되라’(90쪽)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완전히 될대로 되라고 방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완전히 될대로 되라고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쟁에서 이겨야 살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짐승이야 본능대로 살지만, 인간에게 경쟁 의식은 특이해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합니다. 인간은 이러한 의식 때문에 과도하게 경쟁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서 전력투구합니다. 필요해서 또는 부족해서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남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죽도록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홉스가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자연법을 정의한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투쟁하지 않는다면 연애하는 사람이 학점 경쟁에 관심이 없듯이 다른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런 투쟁 상태에서 인간의 선한 측면을 봅니다. 그대로 두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자기가 낳은 자식은 모조리 고아원으로 보내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는 교육학의 고전인 <에밀>을 썼지만, 그는 사실 부조리한 인간이었습니다. 어쨌든 볼테르는 루소의 관점이 대단히 못마땅해서 이 <캉디드>를 썼다고 합니다.

‘인간들은 잘 될 것이라고 믿고 다른 사람에게 낙관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도적 개미같이 자기 창고에 보물을 부지런히 물어 나릅니다. 대표적인 악당중에 과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일 멸망이 온다 해도 괜찮다고 하고, 사과나무가 말라 비틀어져도 사과나무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 재물과 명예의 창고를 가득 채워놓습니다. 변사또 같은 탐욕스러운 악한 영에 사로잡힌 괴수는 내일 멸망이 온다고 열변을 토하며 신자들을 감동시켜 모든 재물을 다 드리라고 하면서 바친 재물을 자기 창고에 다 쌓아놓고 즐깁니다.

‘우리도 이런 일에 분주히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내일을 위하여 부지런히 자기의 분신을 더 좋은 상품으로 복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귀여운 애완동물처럼 금과 보석의 소중함을 심어주고 예쁘다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돌(다이아몬드)과 진흙(금)에 대해 생각지도 못할 광기를 가지고 있어, 그것을 위해 서로 죽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자기의 분신들이 더할 나위없이 최선으로 가도록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할 나위없이 잘 되었다고 믿으며, 악한 자기를 한껏 기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합니까? 누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쉬임없이 지독히도 많은 악을 창조해내는 인간은 대체 무엇이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까? 원인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바른 결론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되뇌이는 석학 판글로스에게 종교재판소의 말단 관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분명히 귀하께서는 원죄를 믿지 않으시는군요”. 모든 것은 잘 되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잘 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잘 되도록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원죄를 이해함이 없이 인간은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십자가께서 죽어야 하고, 왜 우리가 고난받으며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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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이성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의 방향을 잘 제시해주는 글인것 같다. 삭제
김종천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다 잘되게 해놓으셨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나 자신이 문제임을 고백한다. 나자신부터 모든이 앞에 바로 서야겠다. 삭제
김영민 이 세상의 악하고 더러운 상황에서 우리가 다 잘 되게 해놓으신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어떤 것을 추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주고 있는것 같다 삭제
김선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원래 악한 세상에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그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정말 ‘세계를 주께로’가 왜 발송되어야하는지 더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삭제
채미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고민이 남은 것 같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 나의 젊음의 때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더 깊이 고민해 보아야 겠다. 삭제
정신혜 하나님 없이는 모든것이 잘될수 없고 최선이 될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듭남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삭제
김미선 한쪽 발은 하나님께로 가 있지만, 세상 속에서의 발을 떼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이런가? 무엇하나 뚜렷한 대답을 할 수 없는 순간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떠오른다. 이렇게 부족한 나를 위해 돌아가 예수님,, 양쪽 발을 자신에게 내딛길 기다리시는 예수님, 삶의 모든 해답은 예수님 한분으로 통하는 것 같다. 삭제
이선영 악한 자신을 기만하고 오직 생각만 선하게 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발견했습니다. 원죄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에 대해 얼마만큼 받아들이고 인식하였는지에 대해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많은 고통과 역경 가운데서 주님을 믿고 행동과 생각이 일치하여 주께 드려지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삭제
나재창 이 세상은 분명 잘 될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으니까요...다만 남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이 세상이 정말 낙천적으로 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또한 저의 몫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