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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루이스 캐럴

2004.12.01 (06:54:52)

 

너보다 멍청해 보이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그게 바로 내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점이야.
네 얼굴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눈 두 개에,
가운데에 코가 있고,
그 아래엔 입이 있지.
누구나 다 마찬가지야.
그런데 만약 눈 두 개가 모두 코의 한쪽에 붙어 있다거나,
입이 꼭대기에 있다면 알아보기 쉬워지겠지.

-루이스 캐럴, 손영미 역, <거울 나라의 앨리스>, 시공 주니어, 2001, 135쪽-


* * * *


앨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18쪽). 다른 생각을 하면 슬픈 일도 잊을 수 있습니다.

“뚝 그치지 못하겠니? 네가 얼마나 착한 앤지 생각해 봐. 오늘 네가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도 생각해 보고. 지금이 몇 시인지도 생각해 보고. 뭐든 생각해 봐, 울지만 말고!”(102쪽).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게 울음을 그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겁니다(103쪽). 생각을 너무 많이 해도 문제가 되겠지요? 하얀 여왕이 엘리스에게 나이가 얼마냐고 물으니, “정확히, 일곱 살 반”이라고 합니다.

“‘정확히’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런 말은 안 해도 믿어 줄 테니까. 이번에는 내가 너한테 믿을 만한 것을 알려 주마.”

믿을만하다고 한 것이 자기 나이가 딱 백 한 살 5개월하고 하루라고 합니다. 엘리스는 당장 그건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을 믿을 수는 없으니까요.”

* * * *

하얀 여왕은 엘리스가 믿지 못하는 것은 연습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 연습이 부족해서 그럴 거야. 내가 너만할 때에 난 하루에 30분씩 연습을 했어. 응 어떤 때는 아침을 먹기도 전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여섯 개나 믿기도 했지”(104쪽).

우리는 반복된 경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내일 해가 뜰지 안 뜰지는 ‘아무도’가 압니다(Nobody knows).

“‘아무도’를 볼 수 있다니!”(I see nobody, 139쪽).

거꾸로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지요? 거꾸로 사는 것을 연습하면 그게 바로 됩니다. 거꾸로 사는 나라, 거울 나라에 들어가 보시지요?

“거꾸로 살다 보면 다 그래. 처음엔 누구나 조금씩 헷갈리지”(98쪽).

해설

1

거울 나라는 실상과 거꾸로 상을 맺는 허상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습니다. 거울로 사물을 보는 것에 숙달되지 않은 사람은 자기 머리카락 한 올을 잡아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많이 연습하지 않으면 거꾸로 행동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거꾸로 된 세상에 살면 엄청나게 혼란스럽겠지요.

“어디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군!”(97쪽).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게 허무맹랑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부족하면 엉뚱한 짓거리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거꾸로 된 세상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모두 다 거꾸로 된 세상에 거꾸로 살고 있다면 누가 거꾸로 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꿈도 길어지면 꿈인지 모르듯이 말입니다. 세상 산다는 것이 긴 꿈일 수 있다는 겁니다.

“거꾸로 살다 보면 다 그래. 처음엔 누구나 조금씩 헷갈리지”(98쪽).

거꾸로 살기는 힘들겠지만, 거꾸로 생각하는 것은 생각을 바꿔줍니다. 거꾸로 보면 매사에 당연하게 여기던 일이 달리 보입니다. 만일 사고의 전환을 일으킬 수 있다면, 세상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겁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어 놓을 수만 있다면,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앨리스처럼 기억은 “과거에 대해서만 작용”(99쪽)하므로, 오로지 하나만 생각합니다.

“내 기억은 한 방향으로만 작용하는데요, 일어나지 않은 일은 기억할 수 없어요”(99쪽).

인간은 한 방향으로만 생각한다는 증거는 아주 명백한 사실인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실예 하나만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아무런 죄가 없는 예수가 왜 죽어야만 했을까요?(요 19:6) 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죽여야 했을까요? 유대인들이 자기의 왕을 죽여야 했을까요?(요 19:14)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요 19:7).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주장한 것이 죽어야 할 죄목이라니, 아주 이상하지요? 이상한 규칙 때문에 굶어 죽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엘리스는 틀림없이 잼 먹는 날도 있을 거라지만, 하얀 여왕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독자는 이런 나라에서 잼 먹는 날이 있을까요?

“네가 아무리 먹고 싶어해도 못 먹을 거야. ‘어제랑 내일은 잼을 먹고, 오늘은 절대로 먹지 못한다’는 규칙이 있거든”(98쪽).

2

인간은 항상 생각하고 있지만,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 있지는 않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며, 생각하려고 하면 골머리가 아파서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생각해 보자”(18쪽).

앨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앨리스는 전날에 언니와 오랫동안 말다툼을 벌입니다. 그건 순전히 언니한테, ‘그러면 우리가 왕들과 여왕들이라고 생각해 보자’ 하고 말을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18쪽). 언니와 둘이면 ‘왕과 여왕’이라는 것이지요. 왕들이 될 수 있고, 여왕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른들은 언니처럼 자기의 아이에게 이런 규칙을 가르쳐 주고 강요하지요.) 이런 앨리스도 생각이라곤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멍청한 바보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꽃들이 꽃밭(flower bed)에서 늘 잠만 자게 된다’(38쪽)는 참나리의 말에, “난 생각도 못해 본 건데!”라고 말한 앨리스에게, 장미는 “넌 생각이라곤 전혀 해 본 것 같지 않은데”라고 조금 쏘는 듯한 투로 말합니다. 제비꽃은 불쑥 앨리스에게 한 말처럼, 앨리스보다 멍청해 보이는 독자는 없겠지요?

“너보다 멍청해 보이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39쪽).

3

거울 나라 이야기는 앨리스의 생각속으로 들어갑니다. 앨리스는 아기 고양이 키티의 잘못에 대해 따지면서, 다음 주 수요일 키티에게 한꺼번에 벌을 주려고 벼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말을 건다기보다는 혼자말을 하듯이 이야기하는 겁니다.

“참,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벌 줄 걸 전부 세어 놓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연말에 난 어떻게 될까? 그날이 되면, 아마 난 감옥에 가게 될 거야. 그렇지 않는다면, 가만 있자, 한 가지 잘못에 저녁을 한 끼씩 굶게 되면 어쩌지? 그럼 그 불행한 날이 되면, 한꺼번에 자그마치 오십 끼를 굶어야겠네! 하지만 그건 괜찮아! 오십 끼를 억지로 먹는 것보단 차라리 안 먹는 게 나으니까!”(17쪽).

남을 벌주려는 사람, 특히 아이에게 벌 주려는 사람이 앨리스처럼 생각한다면 벌주려는 생각을 잊어버리겠지요? 죄인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벌을 줄만한 의인은 없는 것이지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하얀 여왕은 앨리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벌을 받았기 때문에, 더 좋은 아이가 된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합니다. 앨리스는 동의하면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자, 하얀 여왕이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도 벌을 받았다면 더욱 더 좋았을 거야. 훨씬 좋지, 좋지, 좋고말고!”(100쪽).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도 벌을 받은 분이 있습니다. 그 분에게는 아무 죄가 없기 때문에, 그 분에게 주어진 징벌은 아주 유효한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마땅히 형벌 받을 죄인을 위해 죽은 것입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4

우리는 반복된 경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내일 해가 뜰지 안 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Nobody knows). 이 말을 ‘아무도 (noboby)가 알고 있다’라는 뜻으로 언어 유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예전에 실험실에서 “아무도 몰라. 노바디만 알아”라는 말 놀이를 즐겼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런 유희를 즐기는 우리 자신은 노바디였습니다.

“‘아무도’를 볼 수 있다니!”(I see nobody, 139쪽).

마찬가지로 ‘나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나 ‘나는 아무도를 안다’는 말이나 같습니다. 어린아이의 언어 구조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어린 아이가 말을 처음 배울 때에는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습득합니다. 그는 처음으로 ‘나는 아무도 모른다’(I see nobody)는 말을 접하게 되면, ‘나는 아무도를 본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는 아주 규칙적으로 되어 있는 말(I do not see somebody)이라야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정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은 아닌데, 벌써 골머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독자가 있군요. 골머리가 그렇게 반응하도록 연습되어 있는 겁니다.

우리는 어린아이 때의 순진한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연습했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른은 아이의 생각을 어른의 방식으로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른의 사고 방식에 맞지 않으면 틀렸다고 합니다. 누가 틀렸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마귀는 널 사랑하지 않아.”
“마귀는 널 안 사랑해.”

‘안 좋아해’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문법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어른의 훈련된 생각이니까, 어린아이의 생각에 입각하여 판단해야 하겠지요. 만일 ‘do not love’를 번역한다면 어느 쪽으로 해야 자연스러울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나 더, 우리나라 어른들이 생각없이 묻는 질문을 생각해 보십시오. 단순한 한 마디의 질문이 아이들의 사고에 평생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은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5

개별적 인간이란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자가 인간을 볼 때에 따 똑 같은 먹이로 볼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사자를 다 똑같이 보듯이 말입니다. 험프티 덤프티(영국 전래 동화에 나오는 달걀과 같이 생긴 사람)는 앨리스가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생겨서 다시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얼굴을 보고 구별하면 되지 않느냐는 앨리스의 말에 험프티 덤프티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게 바로 내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점이야. 네 얼굴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눈 두 개에, 가운데에 코가 있고, 그 아래엔 입이 있지. 누구나 다 마찬가지야. 그런데 만약 눈 두 개가 모두 코의 한쪽에 붙어 있다거나, 입이 꼭대기에 있다면 알아보기 쉬워지겠지”(135쪽).

그는 앨리스에게 비생일 선물로 스카프를 줍니다(122쪽). 비생일, 처음 듣는 말이지요? 생일이 아닌 날을 말하는 겁니다. 생일 선물이 좋다는 앨리스의 말에 그는 앨리스에게 일년중 생일이 며칠이냐고 묻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일년중 특별한 날 하루만 생일 선물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364일 선물 받는 날이 없다고요? 그대는 사랑의 선물, 허나 아름다운 것은 늘 멀리 있어서 사람을 섧게 하지요.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늘 더 멀리 있네!”(111쪽).

비생일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이 364일이나 된다는 걸 생각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험프티 덤프티는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합니다.

“생일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은 딱 하루뿐이고. 너한테는 영광스럽겠다!”(124쪽).

영광이라니,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앨리스에게는 ‘납작하게 깨진 말싸움’이라는 뜻이랍니다. 그런 뜻이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쓸느냐고 앨리스는 반박합니다. 그는 조금 깔보는 투로 말합니다.

“내가 어떤 단어를 쓰면, 그것은 바로 내가 선택한 의미만 가지는 거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125쪽).

대단히 억지같고 불가해한 말이지요? (뒤 이어 나오는 험프티 덤프티의 말에서 ‘불가해성’이란 것도 ‘네가 뭘 할 건지 얘기해 달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음.) 한 단어가 가진 실제적인 의미는 사실 두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험프티 덤프티처럼 친절하게 의미를 설명해주면 이해하기 쉽겠지요? 볼테르가 자기와 이야기하려면 먼저 용어를 정의하라고 했던가요? 인간은 언어로 의사소통하고 있지만, 독백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툼도, 아이와의 다툼도, 정치적인 다툼도 다 서로 통하지 않는 단어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단어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생각해보면 앨리스 이야기는 읽어볼만 하지요? 생각을 하세요. 연습을 해 보세요. 그러면 뭐든지 이해가 되고 믿어질 겁니다. 오늘은 여기서 작별해야겠네요.

“아마 연습이 부족해서 그럴 거야. 내가 너만할 때에 난 하루에 30분씩 연습을 했어. 응 어떤 때는 아침을 먹기도 전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여섯 개나 믿기도 했지”(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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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유경 너무 빨리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해서 그런지 엘리스와 같은 창의적인 생각들 새로운 생각들에 대해 전 아주 두려워 하고 잘 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교육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런부분은 참 배울점이 많네요. 어른의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새로운 눈을 키우는 연습을 하루에 한개라고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삭제
김경희 아이들을 어른의 기준에 맞추려고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칠때 제 기준에서 잘한것과 잘못한것을 판단하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제 기준이 항상 옳은지 이글을 보면서 자신이 없네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는 연습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삭제